
헤어진 뒤 재회를 고민하는 과정은 늘 비슷한 갈림길에서 멈춘다. 지금은 더 기다려야 할 시점인지, 아니면 한 번쯤은 다가가 봐도 되는 구간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잡는 것도 두렵고, 마냥 기다리는 것도 불안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 움직여야 할지 자꾸 스스로를 재촉하게 된다.
3편에서는 이 지점에서, 잡는다는 것이 곧 매달리는 일은 아니고 기다린다는 것이 곧 사라지는 선택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을 하느냐보다, 그 선택을 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동안 마음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였다.
그리고 바로 이 구간에서 연락이 애매하게 다시 이어지기 시작하면,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진다. 끝난 것도 아니고 다시 시작된 것도 아닌 상태. 그 중간 지대에서 사람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아니라, 판단을 미루는 동안 마음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 연락이 이어지는데, 왜 마음은 더 불안해질까?
연락은 끊긴 게 아니다. 답장은 온다. 말투도 예전만큼 차갑지는 않다. 그래서 처음에는 안심이 먼저 든다.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도 아직 선 하나는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던 ‘끝났나’라는 질문이 잠시 멈춘다. 이 사람과 나 사이에 아직 무언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숨이 조금 편해진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거지.
…이 정도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마음이 다시 불안해진다. 연락이 없을 때보다 오히려 더 신경이 쓰인다.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알림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답장이 오면 안도하고, 답장이 늦어지면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아까 내가 한 말이 부담이 됐을까, 오늘은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그냥 나에게 마음이 없는 걸까.
…내가 괜히 말을 길게 한 건 아닐까.
…아까 그 이모티콘, 좀 가벼웠나.
이 불안은 연락이 끊겨서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연락이 애매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끊어졌다면 단정할 수 있었을 텐데, 이어지고 있으니 자꾸 기대와 경계가 동시에 올라온다.

● 연락이 없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이유
연락이 아예 없을 때는 그래도 이유가 분명했다. 끝났다는 결론이든, 정리 중이라는 판단이든, 마음이 붙잡힐 자리가 없었다. 아프긴 했지만, 방향은 하나였다. 슬프면 슬픈 대로, 정리해야 한다면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기대했다가 무너지는 일은 적었다.
…힘들긴 해도, 적어도 헷갈리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끝난 것도 아니고, 다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이 애매한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 남자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가오지도 않는다. 이 중간 지대에 여자는 혼자 서 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이 정도면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나만 기대하는 걸까.
…괜히 또 혼자 앞서가는 건 아닐까.
…그래도 이렇게 연락하는데, 아무 의미가 없을 리는 없지.
기대하면 또 다칠 것 같고, 기대하지 않자니 지금 이어지는 이 연락이 자꾸 마음을 흔든다. 마음이 쉬지 못한다. 애매함이 계속 사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 이 불안의 정체는 ‘사랑’이 아니다
이 불안은 사랑이 커져서 생기는 게 아니다. 상대를 더 좋아하게 돼서 생기는 감정도 아니다. 이 불안의 정체는 기준이 사라졌다는 감각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이 연락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는 여기서 뭘 하면 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그 기준이 보이지 않으니까 마음이 계속 흔들린다.
…지금은 기다려야 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사람은 힘든 상황보다 불확실한 상황을 더 견디기 어려워한다. 힘들어도 끝이 보이면 버틴다. 그런데 끝도 아니고 시작도 아닌 상태는, 감정을 계속 소모하게 만든다. 오늘은 괜찮다가도, 내일은 다시 무너진다. 이게 반복되면 마음이 점점 닳는다.
● 여자가 스스로를 더 지치게 만드는 과정
그래서 여자는 자꾸 마음속에서 답을 만들려고 한다. 답장이 조금만 빨라져도 의미를 붙인다. 말투가 부드러우면 ‘그래도 마음이 있긴 있구나’라고 해석한다. 반대로 답이 늦으면 스스로를 말린다. 괜히 혼자 앞서가지 말자, 아직은 조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 아직은 조심해야지.
…너무 기대하면 또 상처받잖아.
그런데 이 다독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다음 답장이 늦어지면,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왜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 하루 기분이 좌우되는지, 왜 아직도 이 사람에게 이렇게 반응하는지.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더 지친다. 기대와 경계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면서, 감정이 계속 소모된다. 문제는, 이 피로가 쌓이면 여자는 점점 ‘정리’를 원하게 된다는 점이다. 애매함을 끝내고 싶어진다.
● 이때 여자가 가장 많이 착각하는 지점
이 불안이 커질수록, 여자는 이 불안을 없애고 싶어진다. 애매함만 정리되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고, 한 번만 확실히 물어보면 모든 게 정리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관계를 정의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우리는 지금 무슨 사이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나만 이렇게 기다리는 건 아닌지. 이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한 번만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계속 흔들리는 게 더 이상하잖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잘못은 아니다. 다만 이 질문이 이 타이밍에 나오면 관계를 멈추게 만든다. 여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 오히려 관계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 이 시점의 남자가 서 있는 자리
이 시점의 남자는 아직 결론을 낸 상태가 아니다. 다시 시작이 싫어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했을 때 감당해야 할 것들을 혼자 계산하고 있는 중이다. 다시 사귀면 예전과 뭐가 달라질지, 또 같은 문제로 힘들어지지는 않을지, 지금의 자기 상태로 연애를 할 수 있을지.
이 계산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여자가 결론을 먼저 꺼내는 순간, 이 계산은 멈춘다. 대신 부담이 먼저 올라온다.
답장은 오지만 속도가 느려지고, 말은 이어지지만 깊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여자는 더 불안해진다. 왜 연락은 되는데 마음은 더 불안해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된다.
● 이 구간에서 여자가 해야 할 유일한 선택
이 구간에서 여자가 해야 할 건 더 잘해보는 게 아니다. 더 붙잡는 것도 아니고, 더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 불안을 없애려는 행동 자체가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 지금 필요한 건 감정을 밀어붙이는 용기가 아니라, 애매함을 견디는 태도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제일 어려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면, 관계는 다시 멈춘다. 반대로 이 애매함을 견디는 동안, 여자는 이전과 다른 위치에 서게 된다.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사람, 혼자서도 중심을 유지하려는 사람. 이 변화는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이전과는 다르게 만든다.
이 애매한 구간은 관계가 끝난 신호가 아니다. 서로가 다시 말을 이어가도 괜찮은 상태로 감정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처음에는 어색함과 긴장이 더 크게 느껴지지만, 이 시간을 서두르지 않고 지나가면 말 한마디, 반응 하나에 담기는 부담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래서 이 구간을 너무 빨리 끝내려고 할수록 오히려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흐름이 끊기기 쉽다.
◉ 이 칼럼은,
헤어진 뒤 연락은 다시 이어지고 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더 불안해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답장이 오는 상황에서 희망과 경계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있다면, 이 불안이 사랑 때문이 아니라 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에 생긴 감정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싶을 때 읽어야 할 칼럼이다.
칼럼출처 : 랭보의 연애시대
https://cafe.naver.com/coun4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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